늙어간다는 것

 


6시쯤 사무실에 있는데 모르는 번호에서 전화가 왔다. 받으니 남자의 잠시만요란 말 후에 바로 어머니가 나에게 집 비밀번호가 기억이 안 난다고 다급한 목소리로 물어보신다. 비밀번호를 알려 드리고, 나도 집으로 가기 위해서 사무실을 좀 일찍 나섰다.

어머니는 이미 집에 들어와계셨다. 그리고 큰일났다고 죽어야겠다고 한 숨을 내쉬신다. 그걸 보고 있으면 너무 마음이 아프다. 사실 그건 어머니의 잘못이 아니다. 치매라고 하는 유명한 병의 이름이 떠오르긴 하지만, 지금 어머니를 보고 있자면 그건 병이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 그냥 어머니는 늙으신 것이고 계속 늙어가고 계신다. 

사실 이런게 처음이 아니다. 작년에도 한 번 부산 집에서 비밀번호를 잊어서 아버지에게 전화하고 난리났던 적이 몇 번인가 있었다. 그리고 지금 몇 번인가 은행에만 가시면 현금 카드 비밀번호를 계속 잘못 입력하셔서 현금 인출을 못 하게 되곤 했다. 기억력의 문제라기 보다는 인지능력, 판단력 등 종합적인 능력을 잃어가시는 것으로 짐작이 된다.

나는 사실 노화에 대해서 그냥 신체의 능력만이 퇴화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 어머니를 옆에서 보면서 내가 잘 못 생각해왔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하긴 늙으면 다시 애기가 된다는 말도 있는데 그걸 몰랐던 것 같다. 옆에서 보면서 느끼는 것은 신체와 정신 모두 능력을 잃어가는 것이 노화인 듯 싶다. 어머니는 이런 날도 있지만 좋은 날도 있기도 하고 그렇게 매일을 살고 계시긴 하지만, 암튼 늙어가고 있고 많은 것을 잃어가고 계신다. 

하지만 옛날 추억 이야기는 많이 하신다. 친아버지나 어머니의 할머니, 혹은 외할머니 등에 대한 이야기. 예전에 외가 식구들 다들 같이 살았던 이야기 등등. 그런것들은 기억하고 계신 것이 다행인 것 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좋았던 기억들은 좀 더 오래 갖고 계셨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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